[어스맨과 친구사이]꿈을 쫓는 봉제사, 청인공방 김미경

어스맨은 사람과 사람의 진심을 잇는 무역을 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스맨이 찾은 제품을 통해 관계 맺은 모든 이는, 좋은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입니다. [어스맨과 친구사이]를 통해 어스맨과 함께하는 친구를 소개하고 알리려 합니다. 어스맨 뿐 아니라 어스맨의 친구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많은 애정 가져주세요.



물건을 고르고 사는 일은 참 쉽습니다. 원하는 물건이 있는 매장에 돈을 지불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몇 번의 동작을 거치면 손쉽게 갖고 싶은 물건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의 물건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이보다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제품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 뒤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민과 과정, 그리고 많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합니다.

라오스 목화는 씨앗을 심은 뒤, 150여 일이 지나야 꽃이 핍니다. 라오스 공정무역 생산자들은 잘 키운 목화를 수확해, 실을 뽑고 나뭇잎이나 열매, 나무껍질에서 얻은 염료로 색을 입힙니다. 그렇게 염색한 실을 베틀에 걸어 다양한 패턴으로 직조해 직물을 만듭니다. 이 직물은 한국으로 건너와 어스맨, 제품 디자이너, 봉제 작업자들의 손을 거쳐 수공예 제품으로 변신합니다.



배우고 연구하는 봉제 마스터

청인공방 김미경 선생님은 38년 동안 봉제 일을 해 온 봉제 마스터입니다. 어스맨이 출시한 수공예 제품은 대부분 김미경 선생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어스맨 직물은 직조 감이 성글어 봉제 작업자 입장에선 다루기 까다로운 편입니다. 하지만, 김미경 선생님은 제품을 의뢰할 때마다, 더 잘 만들 방법을 연구해 주시고 꼼꼼하게 작업을 해주셔서 믿고 제품을 맡기고 있습니다. 봉제 일을 38년 동안 해왔지만, 지금도 대학원을 다니며 배우고 연구하는 열정을 가진 작업자이십니다.



돌고 돌아 봉제 작업자로

김미경 선생님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동네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38년간 이어질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뛰어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한 달을 일하고 다시 찾아가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근데, 딱 1년을 일하고 그만두었다고 해요.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때는 그런게 없었습니다. 전태일 열사 같은 분이 희생하고 나서도 열악함은 쉬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기도,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쉬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죠. 그렇게 방황하다 다시 또 봉제 작업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성장하는 봉제사

다시 봉제 일을 하다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게 많았다고 해요. 가만히 보니 미싱 하는 분들은 미싱만 하더래요. 옷을 만드는 일의 기초인 패턴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주어진 일만 하더라는 거에요. 김미경 선생님은 작업 의뢰를 받으면, 이 원단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너무 궁금했다고 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패턴 하는 분들을 쫓아다니면서, 가르쳐 달라고. 그런데 그 당시에 패턴하는 여성이 드물었대요. 대부분 패턴사는 남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요. 그래서인지 배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학원도 다녀봤는데, 여자를 가르쳐봐야 써먹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대충 가르쳐 주더랍니다. 남자들은 꼼꼼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알려주면서 말이죠. 그렇게 힘겹게 6개월을 배워 앝은 지식을 익혔습니다. 눈치껏 익힌 지식을 응용해 이렇게 저렇게 패턴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어보니 너무 재밌었대요. 그때부턴 새로운 창의력이 마구 솟아났답니다. 그러고 나니 무슨 일이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요. 그냥 주는 것만 받아 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주며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샘플실에서 일하던 시절 누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패턴사가 위고 샘플사는 아래라는 의식이 전반에 깔려 있었대요. 그래서 패턴이 잘못되었어도 미싱사는 그대로 따라가야 했답니다. 한번은 패턴이 잘못 되어있는 게 의뢰가 와서 패턴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미싱사인) 네가 뭘 아냐?'고 면박을 주더래요. 그런 일을 겪다보니 능력을 길러야겠다 생각했대요. 더 배우고 싶어 다방면으로 찾아보던 중 이 일에 자격증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어요. '봉제는 기술인데, 무슨 자격증이 필요해?'라고 생각했었는데, 양장기술사, 양장기능사, 산업기사, 기술사... 체계적인 단계가 있는걸 보고 공부해야 겠구나 싶었다는거에요. 그래서 하나하나 자격증을 따고, 의류 기사 자격증까지 받았답니다. 다시 공부하며 대학도 다니고 지금은 방송통신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이 일도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공부할수록 새로운 게 계속 나오니까 지루하지 않고 너무 즐겁다고 재밌다고요.


삶에서 꿈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온 봉제사들은 봉제가 삶의 일부였어요.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는데, 이게 그냥 삶 자체가 된 거죠." 자신과 같은 세대 봉제사들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게 삶이 되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선 삶의 일부를 넘어서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김미경 선생님도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봉제로 인해 꿈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다시 곰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어요. 한복을 재해석한 의류 디자인을 하는 친구에요. 그 친구가 교육생으로 왔어요. 실꿰는 것부터 가르쳤는데, 4년 만에 엄청난 브랜드로 성장했어요." 김미경 선생님은 '다시 곰'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봉제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겠다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봉제 일이 발전 가능성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하게 해 보자 싶었다고요.

봉제를 배우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해요.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인 거죠.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긴 호흡으로 시간을 들여 배우려 하질 않는 다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배우러 오면 시간 되는대로 와서 배우라고 한대요. 언제든지 오픈해서 가르쳐 줄 수 있으니까, 와서 필요한 만큼 배우고 다음에 또 오라고 말이죠.

누군가에게 교육 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하니까 직업훈련 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석사도 마쳐서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높이는 중이라고 해요. 김미경 선생님은 60세까진, 지금과 같이 봉제 일을 하고 60세 이후에는 가르치는 일만 하자. 목표를 그렇게 세웠고 그렇게 후배들을 길러 내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합니다.

늘 지겹고 그만두고 싶었던 봉제가 이렇게 즐겁고 삶의 활력을 주는 일로 바뀔 줄 몰랐다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가위질 한 번에 경력이 쌓이고 미싱을 돌릴 때마다 연륜이 쌓이니 봉제는 자신의 삶에 플러스라고 말하는 김미경 선생님. 앞으로 만들어 갈 어스맨 제품도 김미경 선생님에게 플러스로 쌓여나가길 바라고 기대합니다.




글, 사진 어스맨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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